Abstract
헤겔의 윤리학 내지 사회 · 정치철학에서 아주 많이 거론되고 있는 핵심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정(認定) 내지 승인(承認)의 문제다. 그리고 많은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논의할 때 헤겔의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을 그 중심 텍스트로 삼고 있다. 물론,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 상호간의 인정(승인)문제는 실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소한 다툼에서부터, 죽음을 초래하기까지 하는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거의 모든 투쟁의 배경 내지 근저에는 바로 인간 상호간의 인정 내지 무시(無視)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하고 있는 생사를 건 인정투쟁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 결코 국가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헤겔은 후자의 상태(조건)에서 발생하는 투쟁을 결코 ‘인정투쟁’이라고 부르지 않고 ‘결투’라고 불렀다. 이 점을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다. 헤겔이 말하는 맥락을 떠난 의미의 ‘인정투쟁’이 국가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헤겔이 말하는 바가 아니다.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해 필자는『정신현상학』이전의 헤겔의 저술들인 『인륜의 체계』(System der Sittlichkeit, 1802/03)와 『예나체계기획』(Jenenser Systementwürfe, 1803/04; 1805/06)에 나타난 인정 및 인정투쟁의 문제를 함께 검토한다. 이 글에서는 후쿠야마의 경우를 예로 들어, 원 저자가 사용한 용어의 본래 의미를 벗어나 자의적(恣意的)으로 용어를 사용하는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아울러, 인정투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주인과 노예와 관련된 그의 이해의 문제점, 플라톤의 혼 3분설에 대한 그의 해석과 관련된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의 오류, 특히 ‘패기’[thymos]에 대한 이해의 문제점 등을 지적함으로써 그의 주장이 철학의 고전적인 텍스트들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 및 정확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글의 성격상, ‘역사의 종말’에 대한 그의 이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에 관해서는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만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