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에서 내가 다뤄보려고 하는 첫 번째 주제는 주권에 관한 데리다의 작업이다. 주권의 문제는 초기 데리다 저술에서는 거의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다가 1990년대 후반 이후 법, 정의, 폭력, 환대, 세계시민주의 등과 더불어 데리다 정치철학의 주요 주제가 된다. 주권에 관한 데리다의 논의는 그의 철학에 고유한 유사초월론의 논리에 기반을 둔 매우 사변적인 논의이지만, 세계화 이후 전개되는 국민국가의 쇠퇴, 이주, 난민, 국경의 폭력 등의 문제에 대해 매우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준다. 데리다의 주권 개념의 특성을 칼 슈미트에 대한 데리다의 독해와 관련하여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두 번째 주제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초점을 둔 데리다의 슈미트 독해는 슈미트 정치철학 및 법철학의 핵심개념인 적과 동지의 구별, 결정, 주권 개념이 암묵적으로 기반을 두고 있는 주체성의 논리의 한계를 보여준다. 아울러 주권이라는 것은 자기성의 원리에 기반을 두지만, 자기성에 고유한 면역의 메커니즘은 자기면역의 한계를 드러낸다. 따라서 주권에 관한 데리다의 논의는 근대 주권 개념이 지닌 양가성 내지 아포리아를 보여주며, 이는 주권의 국민적 전제를 변혁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