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대승기신론』과 원효가 펼치는 일심一心의 언어에 대한 이해들에는 ‘본체·현상 존재론’이 적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일심一心에다가 ‘모든 생멸하는 현상들을 지어내거나 포괄하는 본체’의 지위를 부여한 후 ‘생멸하는 현상들’과 ‘생멸현상으로부터 벗어나 불생불멸하는 본체’의 상호관계를 설명해 보려는 시선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선은 ‘생멸生滅’과 ‘진여眞如’라는 개념도 각각 현상과 본체에 배정하곤 한다. 일심一心을 이런 시선으로 읽는 한, 원효나 『대승기신론』및 대승의 일심一心철학을 우파니샤드 아뜨만 철학의 범주에서 구출하기는 어렵다. 불변의 본체든 공한 본체든, ‘본체·현상 존재론’으로 일심一心에 접근하는 한, 우파니샤드의 사유구조에서 탈출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정작 원효가 펼치는 일심一心의 언어에는 그 어디에서도 ‘본체·현상 존재론’이라 할 내용이 목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승기신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일심에 대한 ‘본체·현상적 이해’가 난무하는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두 가지 이유를 주목하고 싶다. 인간에게는 ‘본체·현상 존재론’을 쉽사리 수긍하는 사유방식이 내면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그 하나이고, 원효가 구사하는 용어에 대한 일상 언어적 오해가 다른 하나이다. 본고는 ‘본체·현상 존재론’을 선호하는 사유방식을 발생시킨 조건들을 살펴보는 동시에, 용어의 의미를 발생시키는 조건들을 간과하는 일상 언어적 이해가 원효사상 이해에서 작동하는 사례를 음미한다. 새로운 독법의 정초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