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21세기 ‘문명’이 현실상황을 진단하고 미래세계를 조망하는 본원적 기제와 학문적 탐구로 안착하기까지는 지난한 문명사적 투쟁이 자리한다. 유럽이 세계를 석권한 제국주의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오직 하나의 세계문명이라는 단수로서의 기독교문명만이 존재했다. 그런 차원에서 문명비평가 슈펭글러와 토인비 등은 서구의 지배이념이었던 단일문명론에 맞서 문명의 복수적 의미를 인정하고 확대했다. 주쳰즈의 ‘세계문화유형론’은 이러한 지성사적 반향이라고 할 수 있다. 논구컨대 그의 ‘세계문화 3원론’은 문화학의 전체 생명선인 지식문화의 유형과 특질로부터 착상된 것이다. 이를테면 종교문화, 철학문화, 과학문화가 그것이다. 먼저 이 이론체계는 헤겔의 문화지리학의 형이상학적 이해를 통해 고원문화는 ‘인도’로서 지리적 특성상 종교적 문화를, 평원문화는 ‘중국’으로서 지리적 특성상 철학적 문화를, 해양문화는 ‘서양’으로서 지리적 특성상 과학적 문화를 각각 형성한다. 이 지리적 3원론은 야스퍼스가 주창하는 기축정신을 체현한 역사민족의 문화패턴으로서 재차 인류역사시대의 문화구역, 즉 지식문화의 특질에 따른 세 영역의 문화단위로 확정된다. 주쳰즈는 여기에 더하여 량수밍의 ‘문화의 3방향설’과 막스 셸러의 ‘지식의 3형식’을 원용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문화 3원론’의 현재적 정체성을 정형화한다. 문명의 다극화체제가 확실시되는 오늘날 주쳰즈가 구도한 세계문화유형론은 세계사 전체상을 조망하는 ‘다중심적 문명다원주의’의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현대 문명대안론을 주도한 헌팅턴의 이론이 다원주의의 옷을 걸친 서구문화쇼비니즘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감안해볼 때 그의 ‘동아시아 문화유형론’이 갖는 다원주의적 현재성은 더욱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