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오늘날 현대인은 만성 피로로 지쳐 있다. 한병철은 이러한 현대사회의 모습을 피로사회로 규정하고, 그 원인이 과도한 자기 긍정의 성과 주체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과도한 피로로 인한 소진증후군과 같은 정신적 질병은 일 중독의 도핑 사회에서 성과 주체가 보여주는 필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피로의 탓을 오로지 성과 주체의 내적 원인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성과 주체 자체가 이미 자기 성취와 자기 발견과 전혀 무관한 노동만을 암암리에 강요하는 사회의 외적 지배구조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오늘날 질병으로서 인식되는 현대인의 만성적 피로가 근본적으로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특히 노동(일)과 관련하여 다시 검토하고, 철학상담의 치유의 관점에서 피로사회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삶의 태도와 방식의 변화인 ‘성과 주체’의 삶에서 ‘열매 주체’의 삶으로의 변화를 제안한다. 이때 생존과 가치 실현의 목적 외에 우리가 가진 노동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개념을 교정하고, 노동의 세계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자기변형을 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오늘날 현대인은 바쁜 일상 안에서 온전히 자기 존재로서 주체적 삶을 살지 못한다. 성과를 부추기는 사회에 매몰된 채 병적인 과잉 긍정의 모습을 보이는 성과 주체의 삶이 결코 주체성 있는 삶이라 할 수는 없다. 현대인의 삶에서 주체성 있는 삶은 가능한 한 성과를 내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해방하는 ‘여유’에 있다. 이런 여유로움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성과 욕망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된 사회에서 성과 주체가 자기 착취의 가학적 모습을 띤다면, 열매 주체는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여유로움을 통해서 해방과 자유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