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앙리의 현상학은 두 가지 말, ‘삶의 말’과 ‘세계의 말’을 상정한다. 따라서 앙리의 현상학에서도 두 가지 언어를 상정하는 다른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언어 사이에 번역의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앙리가 반복해서 밝히고 있는 바, 삶은 결코 자신을 세계 속에서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앙리의 현상학 역시 세계의 말로 작성되고 세계 속에서 전개되는 철학인 한, 삶의 나타남을 드러내려는 앙리 현상학의 기획은 그 자체로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앙리의 현상학에서 번역의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앙리 현상학의 가능성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다. 그러나 앙리 현상학의 주된 주장 가운데 하나인 ‘나타남의 이중성’, 즉 세계와 삶의 본질적 동시성에 대한 이해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 본 글에서는 앙리 현상학에서 삶에 대한 번역 가능성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이 문제가 앙리 현상학의 체계 속에서 일종의 거짓문제로 밝혀짐으로써 해결되기보다는 해소되어 버리는지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