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고청 서기와 구봉 송익필은 조선중기 신분적 제약 속에서도 수양과 학문에 정진하여 기호유학에 큰 업적을 남긴 유학자이다. 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적 굴레에 얽매여 과거시험을 통한 관직의 길이 막혔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평생 동안 투철한 선비정신의 실천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교유하기도 하였으며, 두 사람 모두에게 가르침을 받은 송준길의 부친 송이창을 통하여, 충청 기호유학 형성 기반에 큰 영향을 남기고 있다. 이처럼 성리학을 국가제도의 기본이념으로 하는 조선중엽의 사회에서, 신분 차별과 관직의 길이 막힌 현실적 질곡을 극복하고 유학자로서 큰 업적을 남긴 두 사람의 실천정신 근저에는 고도(古道)를 지향한 도학정신이 자리한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실천정신에는, 탕(湯)임금이 설파한 ‘입현무방(立賢無方)’의 유가본래의 평등과 소통정신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대학』에서 공자가 말한 왕도(王道)실천원리인 ‘혈구지도(絜矩之道)’와 그 맥을 같이한다. 아울러 두 사람이 추구한 평등과 소통의 실천적인 선비정신은, 오늘날 다문화와 다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쟁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거울로 삼아 본받고 실천할 수 있는 정신적 귀감으로서 큰 의의를 지닌다.